[기고] 이승만 대통령, 전시 ‘해군 정훈음악대’ 창설로 납북 위기 클래식 음악인들 구해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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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승만 대통령, 전시 ‘해군 정훈음악대’ 창설로 납북 위기 클래식 음악인들 구해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3 15:08
정성엽 전 해군 정훈공보실장. 대한민국 군가기념사업회 상임이사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 3주만인 22일 관객수 82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건국 대통령을 기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새삼 우리는 이제야 우남 이승만 대통령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지 않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오늘날 ‘K-클래식’이라며 자랑스러워하는 우리의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 발전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함락되자 음악인들은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음악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줄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북한 김일성은 선전선동 도구로서의 음악적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중국 공산당원이던 정율성을 북한군 소령 계급을 주면서 데려왔다. 정율성은 서울에 남아있던 음악인들을 포섭, 강제 납북하기도 했다. 때문에 육군사관학교 교가를 작곡했고 가곡 ‘그대 있음에’로 유명한 김순애 교수의 남편인 바리톤 김형로 교수를 비롯해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많은 음악인이 납북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이에 서울교향악단 지휘자 김생려와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였던 김천애는 군에 음악대를 둘 것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각 군에서는 당면 작전을 이유로 반대했으나 부인이 이화여전 음악과 출신으로 음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은 참모들을 설득해 1950년 10월 1일 ‘해군정훈음악대’를 창설하게 된다.
부산 부평동에 있던 ‘ㅁ자’ 형태 3층 건물 ‘부평여관’에 남녀 음악인 130명이 합숙하며 교향악단, 합창단, 창작부 등을 운영하게 된다. 김동진, 김성태, 나운영, 윤용하 등 작곡가와 김생려, 임원식 등 지휘자, 바이올린 안병소, 첼로 전봉초, 피아노 백낙호, 성악가 김천애, 이인범, 김혜란, 황병덕, 오현명, 안형일 등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당대 최고의 음악인들이 소속돼 수많은 연주 활동을 이어가며 군과 시민들을 위로하고 사기를 앙양시켰다.
전쟁 중 창단된 정훈음악대가 1950년 12월 진해순회 연주 중 촬영한 사진이다. 대원 모두 해군 군무원 신분으로 해군 군복을 착용한 모습이 이채롭다. 대한민국 군가기념사업회 제공
결과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납북의 위기에서 구했던 수많은 음악인은 우리 클래식계의 기둥 역할을 거쳐 오늘날 족보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혼성 전문합창단도 여기서 탄생했으며 ‘해군교향악단’은 1957년,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명칭을 바꾸어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전문잡지인 ‘정훈음악’을 발간하기도 했다. 서울을 수복한 후 1950년 11월 11일, 해군창설 5주년을 맞아 ‘정훈음악대’는 명동 ‘시공관’에서 3일간 6회의 기념음악회를 개최해 전쟁 중인 유엔군과 많은 시민을 위로하기도 했다.
내년은 대한민국 해군이 창설된 지 80주년이 되는 해다. 오늘 날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있게 한 해군에 감사하는 축하 연주는 펼쳐질까? 전쟁 중에 음악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이기에 음악인으로서 이승만 대통령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정성엽 대한민국군가기념회 상임이사, 정리=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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